【상식의 반전】

한국 최초의 우표는 광복 후에 나왔다?

초기의 우편 요금은 후불제였다. 거리와 중량, 편지지의 장 수에 따라 요금이 들쭉날쭉했다. 받는 사람이 돈을 지불하지 못하면 우편물이 되돌아가기도 했다. 고의적으로 우편물 수취를 거부하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우편물을 받는 사람의 불편을 덜고 또 수취 거부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고안된 것이 우표다. 당시 이런 우편제도의 불합리성을 깨달은 선각자가 있었으니, 바로 ‘근대 우편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의 교육자 롤런드 힐(Rowland Hill, 1795~1879)이다. 그는 1837년 우편제도 개혁에 관한 논문을 통해 요금의 발신자 부담, 전국 균일 요금제, 요금 선납표시 우표제, 특권층의 무료 우편제도 폐지 등의 4가지 혁신안을 제시했다. 힐의 제안은 1839년 영국 의회에서 받아들여졌다.

1840년 5월 6일 영국 왕실은 빅토리아 여왕의 옆얼굴이 새겨진 1페니짜리 우표를 발행했다. 검은색으로 인쇄돼 ‘페니 블랙(penny black)’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이 페니 블랙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형태의 세계 제1호 우표다. 페니 블랙이 최초의 근대적 우표로 인정받는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정액제와 발송자가 우편 요금을 모두 선납하게 한 점이다. 이어 5월 8일에는 세계 제2호인 ‘펜스 블루(pence blue)’라는 2펜스짜리 우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국에서 성공을 거둔 근대 우편제도는 곧 유럽과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브라질(1843), 미국(1847)이 뒤를 이어 우표를 발행했다. 이후 프랑스와 독일(1849), 이탈리아(1852)가 각각 처음으로 우표를 발행했다. 아시아에서는 1852년 인도가 가장 먼저 우표를 도입했다. 일본은 1871년, 중국은 1878년에 각각 용(龍)을 도안으로 한 우표를 처음 선보였다.

우표에는 국명이 표시된다. 근대식 우편제도를 두 번째로 도입한 스위스가 가장 먼저 국명을 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표 종주국인 영국만은 예외다. 가장 먼저 우표를 만든 나라임을 알리기 위해서다.

우리나라도 일본, 중국과 마찬가지로 19세기에 우표를 발행했다. 1884년 4월 22일 고종 황제의 칙령으로 우정총국이 설치됐다. 고종은 제26대 왕(재위 1863~1907)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 초대 우정총판 홍영식(1855~1884)은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 도안을 완성했다. 우정총국은 7개월 정도의 준비 기간을 거쳐 그해 11월 18일 역사적인 업무 개시일에 맞춰 첫 우표를 내놓았다. 이때 일본 대장성 인쇄국에 의뢰해 발행한 우표가 ‘문위우표(文位郵票)’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 우표다. 태극무늬 둘레를 당초문이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다. ‘문위’는 당시의 화폐 단위가 ‘문(文, 문은 1푼을 뜻한다)’이었기 때문에 후에 수집가들이 붙인 이름이다. 문위우표 발행 당시에는 우표가 아닌 ‘우초(郵鈔)’라는 단어를 썼다. 문위우표 전면에는 ‘COREAN POST’라는 영문과 함께 ‘대조선국우초(大朝鮮國郵鈔)’라는 글자를 새겼다. 우표의 발행 주체는 ‘대조선국’이지만 디자인에서 인쇄까지 제조 작업은 모두 일본에서 일본인의 손을 거쳤다.

문위우표는 5문·10문·25문·50문·100문짜리 등 5종에 걸쳐 280만 장을 발행했다. 이 중 5문 우표(50만 장)와 10문 우표(100만 장) 등 우표 2만 장은 우정총국의 업무 개시일까지 먼저 한성에 도착했다. 나머지 3종(25문, 50문, 100문)은 4개월 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1884년 12월 4일 우정총국 개국 연회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나 우정총국이 문을 닫자 사업 자체가 중단됐다.

결국 우표는 창고에 방치된 채 바깥 구경을 못했다. 문위우표는 불과 18일간 쓰이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비운의 우표로 기록됐다. 우표 수백만 장은 그대로 쓰레기가 될 위기에 처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은 인쇄 대금을 달라고 재촉했다. 이때 나타난 구세주가 독일계 무역회사인 세창양행이다. 세창양행은 왕실 대신 우표 대금을 해결해주고 우표를 모두 독일로 가져갔다. 이 우표들은 ‘코리아 최초의 우표’라는 이름을 달고 포장지로 예쁘게 꾸며져 서양의 우표 수집가들에게 팔려나갔다. 문위우표 중 ‘엔타이어(entire) 문위우표’는 지금까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우표는 우정총국이 업무를 수행한 18일 사이에 사용된 우표로 우정총국의 소인이 찍혀 있다.

그 후 10년의 긴 공백을 거쳐 신식 우편 업무가 다시 시작됐다. 1895년 5푼, 1돈, 2돈 5푼, 5돈짜리 ‘태극우표’ 4종이 발행됐다. 태극우표는 미국에 인쇄를 의뢰해 발행했다. 태극우표는 우리나라 우표 유통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 1900년 한국 최초로 국내에서 인쇄한 이화(李花)보통우표가 나왔다. 1902년 10월 8일 고종 황제 즉위 40주년과 60세를 기념해 전환국에서 기념우표가 발행됐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기념우표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로 통신권을 일본에 빼앗기면서 우리나라는 일본 우표를 사용해야 하는 슬픔을 겪었다.

해방 후인 1946년 2월 1일 일본 우표의 액면을 개정해 ‘조선우표’라고 가쇄(假刷)한 것을 발행해 잠정 사용했다. 우리나라는 1945년 광복 직후에 우표를 발행할 시설이 없었다. 이 때문에 미군정은 정상적인 우표를 발행할 때까지 일본 우표에 ‘조선’이라는 이름을 덧입혀 사용했다. 1946년 5월 1일 ‘해방 1주년 기념우표’가 최초의 정쇄우표로 나왔다. 이 우표가 발행되면서 일본 우표의 사용을 금지했다. 그해 9월 10일에는 최초로 인물이 들어간 우표가 나왔다. 이순신 장군이었는데 당시 가격은 10원이었다. 미군정은 이 우표를 첨성대, 무궁화, 한반도 지도, 신라 금관 도안 우표와 함께 발행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의 이름으로 나온 최초의 우표인 ‘대한민국 우표’가 발행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기념한 우표였다.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와 나라 꽃 무궁화를 도안으로 사용했고, 각각 5만 장씩 발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