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우표라는 '문위우표 5종'입니다.
실제로는 5문과 10문 두개만 발행되고 나머지는 창고에서 썩던중
우표사업실패로 사라진 비운의 우표죠.
이 우표는 유니크까지는 아니지만 만약 이 우표 5장중 하나라도
소인이 찍혀 있었다면 그건 초레어!! 초 유니크 아이템입니다.
5문짜리 우표에 소인이 찍힌건 전국에 7장 밖에 발견안되었다고 하더군요.
소인이 찍히거나 봉투에 붙어있는 것이 발견된다면 가격은 일천만원을 호가!!
단, 제가 가진건 발행하지도 못하고 창고에 썩던 것이라 장당 5만원... -.,-
(아버지가 학생시절에 모았던 우표)
----- 밑에는 '규니의 취미생활' 이라는 블로그에서 퍼온 우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세계우표가 탄생되고 44년 후 1884년 11월 18일(음력 10월 1일) 근대조선의선각자인 홍영식(洪英植)선생에 의해 탄생 되었다. 홍영식 선생은 일찍이 개화의눈을 떠 당시 신사유람단으로 일본과 미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어 근대의 문물제도를돌아본뒤 우편제도가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깨닫고 고종황제께 우편제도의필요성을 상소하였다.
한편 김옥균, 박영효와는 "한성순보"를 발행해서 우편제도의 실현을 위해 분위기를고조시켜 나갔다. 고종황제는 당시 병조참판이던 홍영식선생을 우정총판(현 정보통신부장관)에 임명하고 우편제도 창설을 왕의 칙명으로 내렸다. 칙명을 받은 선생은 고종황제로부터 하사받은 전의감(당시 궁중의 약방) 건물을 고쳐 우정총국(현 체신기념관)으로만들어 우편제도 실시를 위한 각종 우정법규를 제정하였다.
태극을 디자인한 5종의문위우표를 일본의 대장성에 인쇄 의뢰하였으나 일본은 태극을 소재로 디자인된 것을전혀 다른 모습으로 멋대로 인쇄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1844년 11월 18일부터 사용된5문, 10문의 문위우표로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가 된다.
서울(漢城)과 인천(濟物浦)을 시작으로 근대우편이 탄생 되며, 개화기를 맞고 있는우리의 정국은 청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사대당과 일본의 세력을 등에 업은 개화당이서로 대립하는 혼란속에 홍영식, 김옥균, 박영효 등이 이끄는 개화당이 우정총국 낙성식날(1884년 12월 4일) 사대당을 몰아내는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정변은 3일천하로 끝나고 홍영식 선생은 12월 6일 참살 당한다.
우리나라의 근대우편은 불과 19일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또한, 뒤늦게 도착한 25문,50문, 100문의 우표는 사용되어 보지도 못하고 최초의 미발행 우표가 되기도 하였다.일본에 의뢰한 5종의 우표 인쇄대금을 지불하기가 어려워 당시 우리나라에 주재하던독일상사 세창양행에 문위우표를 매각하여 대금을 지불하였다고 한다.
출 처 : [인터넷] http://www.komse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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